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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인문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향수 ON THE ROAD 2016.09.10 14:17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유익하게 쓰는 데에 당신이 가진 시간과 마음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라” - p.27.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군중에 섞일 경우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전에 스스로를 붙잡아야 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다수의 이질적인 자아에 짓눌려 자기인식을 잃어버린다” - p.85.

 

“사유하는 사람인 당신은 반드시 세상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평정을 잃는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사유, 의지를 멈춘 사유가 몽상이 아니면 무엇 이겠는가? 비현실적인 몽상은 추상적 사유의 암초다.” - p.103.

 

“마을에서는 주택만 보지 말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보아라. 화랑이나 미술관에서는 작품만이 아니라 예술과 삶의 양식, 운명과 자연의 개념, 기법과 영감과 감성이 계승되거나 바뀌는 추세를 보아라. 작업장에서는 철과 나무가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재산, 노동, 고대와 현대의 사회경제와 계급 관계가 말하는 것을 들어라...(중략)...사상가는 여과기와 같아서 진리는 그를 통과해 지나가면서 가장 좋은 알맹이만을 남긴다. 듣는 법을 배워라 우선 누구의 말이든 들어라.” -p.118-9.

 

1. 들어가는 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쉽게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프랑스의 가톨릭 신학자 철학자이다. 도미니크회에 입회 하였고, 신토마스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가 되었다. 그에게 ‘토마스’(토마스 아퀴나스)는 삶의 이정표요, 지향점 이기도 했다. 『공부하는 삶』은 그가 일생을 살면서 얻은 공부에 필요한 정신, 조건, 방법 등을 정갈하게 엮은 글 모음이다. 동시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저술한(저술 했다고 알려진) 『지식의 보물을 획득하기 위한 16가지 조언』의 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밝힌다. 물론 온전히 그 ‘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세르티양주 스스로의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2. 본론으로...
『공부하는 삶』 이 제목만 놓고 본다면, 오늘날 한국에 휘몰아치는 ‘교육열’에 어떤 ‘빛’을 선사해 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지도 모른다(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자녀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 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행위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진정한 『공부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면, 타인에게(비록 가족일지라도) 이 책을 권하는 자세는 정직하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는 ‘공부’라는 ‘용어’에 짓눌리거나 함몰되어 살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까지 우리는 ‘공부’ 앞에서 무릎 꿇거나 치열하게 ‘저항’하려는 마음을 씻어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세르티양주’는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공부’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공부하는 삶』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먹고 살아가는 현실의 ‘안락’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초월한 ‘진리’를 향한 진지하고도 무거운 그러나 경탄가운데 내딛는 숭고한 발걸음이다. 고차원적인 ‘무엇’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창세기의 선언으로 부터, 시작하는 ‘진리’의 토대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비로소 밝히 드러난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따르면서, 어떻게 ‘사랑’을 드러낼 것 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 하루, 더 나은 미래의 ‘한 날’을 풍요롭게 살기위해 획득하는 ‘지식’이 공부하는 삶의 목표는 결코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가치’있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주어진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도록 방치하는 삶이다.

 

물론, 우리가 짊어진 ‘현실’의 냉혹함과 치열함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저자가 ‘가톨릭 수도사’로 가사와 직업의 몰이해를 짐작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저자는 ‘매일’ 몇 십 시간, 혹은 몇 날을 『공부하는 삶』을 위해 특정 행위를 반복 하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소(혹은 최대)한, 하루에 ‘2시간’만이라도, 투자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본다면 ‘진리’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공부하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공부하는 시간, 영역, 정신’에 이어서 ‘공부의 실전’으로 넘어가면 결국 ‘글쓰기’에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절대적 방법’이 아닌, 상대적이고 지극히 개인의 ‘환경과 성향’에 맞추어 조절 할 수 있다. 저자는 ‘절대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습득한 ‘방법론’을 설명 할 뿐이다.

 

3. 마무리...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다음, 책 등 상단에 ‘필독서’라고 붉은 펜으로 적었다. 그 이유는 2독을 위한 ‘준비’이며, 여러 번 곱씹어 『공부하는 삶』으로 만들려는 다짐이다. 우리는 유아기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말하고, 읽고, 듣고, 쓰고’를 익히며 사용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온전하게 『공부하는 삶』으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또한 익혔던 그 모든 것이 ‘진리’(또 다른 표현으로는 ‘사랑’)를 밝히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욕망을 위한 ‘공부’는 결국 욕망의 사슬에 묶일 뿐이다. 진리는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타인(자녀)에게 투영한 삶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공부하는 삶』의 ‘정점’은 ‘사랑’(진리)이다.

 

그 ‘진리’를 위하여, 이 책(저자)의 ‘조언’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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